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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열들의 역사와 문화, 과학, 지혜를 모아 만든 모든 시설들을 관리하는 홍성역사문화시설관리사업소

상설전시

홍주성역사관 전시 상설전시

홍주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홍주성역사관

홍주역사관 관람순서
예상관람시간
  • 지상층(기획전시실 약 10분)
  • 지하층(상설전시실 약 40분)
PROLOGUE 천년의 고장, 홍주洪州
홍성 역사연표
홍성의 옛 이름은 홍주

"홍주는 호서의 거읍이다. 그 땅이 기름지고 넓으며, 그 백성이 번성하고
많다." 洪州, 湖西之巨邑. 其地沃以廣, 其民繁以庶. 신증동국여지승람

1 이 땅에 살아간 흔적
홍주성 역사박물관 ZONE1
홍성의 선사시대
  • 홍성의 옥암리와 상정리, 남장리 등 각지에서 발굴된 선사 시대 유물을
    전시하여, 구석기 시대부터 홍성에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고대의 홍성
  • 원삼국시대 마한의 소국과 홍성의 관련성을 추측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결성 신금성에서 출토된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유물을 볼 수 있다.
천년의 고장, 홍주洪州
  • 고려 초 홍성은 '운주運州'라고 불렸다. 1018년에는 '홍주洪州'로 고쳐 3군 11현을 관할하였고, 1358년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까지 이어져 내포지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홍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2 이 땅에 살아간 사람들
홍주성 역사박물관 ZONE1 홍주성 역사박물관 ZONE1
내포의 거읍을 다스린 지방관, 홍주목사洪州牧使

홍주목에는 정3품 목사牧使가 부임하였는데, 189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455명의 인물들이 홍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이곳에는 역대 홍주 목사로 거쳐 간
인물의 사료를 전시하였다.

난중亂中에 난亂을 평정하다, 이몽학의 난과 홍가신

임진왜란이 한창 진행 중인 1596년에 왕실 서자인 이몽학이 홍산에서 난을
일으켰다. 이때 홍주목사 홍가신은 무장 임득의, 박명현, 신경행 등과 합세하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반란군의 공격을 막아 위기에 처한 조선을 지켜냈다.
관련 유물을 통해 백월산 산신제와 홍성에 남겨진 청난 5공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내포의 상권을 주름잡던 원홍주등육군상무사

조선 후기 물자 유통이 활발해지자 부보상負褓商들은 홍주, 결성, 보령, 청양, 대흥, 오천 등 6군을 하나의 상권으로 묶어 내포지역을 대표하는 원홍주등육군상무사를 조직하였다. 유물을 통해 부보상의 활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전시 공간이다.

홍성의 세거성씨世居姓氏

홍성에는 예부터 여러 성씨가 누대를 거쳐서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도시화를 거치면서 홍성지역의 세거성씨는 상당수 흩어졌지만, 아직도 여러 성씨들의 귀중한 유물·유적이 남아 있다.

대를 이은 무인가문, 담양 전씨

홍성의 담양전씨는 수많은 무인을 배출한 대표적인 무인가문이다. 이곳에서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인 전운상 영정, 전일상 영정과 석천한유도, 전세진 만인산 등을 볼 수 있다.

기호유학의 큰 별, 남당 한원진

남당 한원진韓元震은 조선후기 사계 김장생 – 우암 송시열 – 수암 권상하로 이어진 기호 유학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한원진은 1709년 홍주 한산사(현 보령시 천북면)에서 이간 등과 함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 논쟁은 일명 ‘호락논쟁’으로 불리며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리학 논쟁으로 확대되었고, 근대이후 위정척사와 개화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전시된 유물을 통해 한원진의 학문 세계와 관직 생활을 이해 할 수 있다.

3 이 땅에서 일어난 일들
홍주성 역사박물관 ZONE1 홍주성 역사박물관 ZONE1
신앙의 묏자리, 홍주성지

바다와 인접하여 외부 문물 수용의 창구 역할을 했던 홍주는 이른 시기부터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1792년 홍주옥에서 얼어 죽은 원시장을 시작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홍주목에서 순교하였다. 홍주영장 노상추의 일기 등을 통해 당시 천주교 박해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홍주지역의 동학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홍성 지역의 동학군은 홍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많은 희생자만 남기고 패퇴하였고 이후 일본군, 관군, 유회군의 대대적인 토벌에 의해 진압되었다. 상당한 성세를 보였던 동학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홍성

조선은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변경하고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자주적인 근대화가 좌절되고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1905년 이후 문서는 대한제국 시기이지만 사실상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홍주와 결성의 시대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홍주의병洪州義兵,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홍주의병은 남당학파의 전통이 강한 내포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어 일어난 의병이다. 1차 홍주의병(1896)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대하여 일어났고,
2차 홍주의병(1906)은 을사늑약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홍주의병 관련 유물을 통해 남당 한원진으로부터 이어진 기호유학의 대의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일제에 항거한 홍성사람들

일제의 폭압에 반발하여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자 홍성 전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으며, 그 중에서도 장곡 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하였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에 앞장섰고, 백야 김좌진은 무력투쟁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였다. 홍성인들의 저항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홍성의 근대교육

홍성의 근대교육은 사립학교인 팔명학교八明學校에서 시작되었고, 1907년
홍성 최초의 공립학교인 홍주공립보통학교(現 홍성초)가 개교하였다. 전시 유물을 통해 홍성의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을 배울 수 있다.

홍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홍성군은 1941년과 1942년에 홍주면과 광천면이 각각 홍성읍·광천읍으로 승격되고, 2017년 홍북읍이 홍북읍으로 승격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3년 1월 충남도청이 홍북읍으로 이전하면서 내포지역의 중심지로서 옛 영화를 재현하고 있는 홍성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홍성의 인물 - 사라진 우리의 소리와 춤을 되살린 한성준

한성준은 홍성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춤과 북 등 각종 재주를 배우며 자랐다. 원각사 무대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다가, 흩어진 무용을 체계화하여 승무·학무·태평무 등을 무대화하였다. 6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명고수와 무용가로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 한성준이 참여한 공연 녹음을 통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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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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